'슈퍼가젤형 기업'을 만든 사람들(동아일보 10.09.18)
10 2010-09-18 14:08
관리자    

[‘슈퍼가젤형기업’ 만든 사람들]<4> 한국정밀기계 하종식 대표

작업자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한 전자 멜로디와 함께 천장에 달린 30t 규모의 크레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크레인의 쇠갈고리에 거대한 철제 원통을 거는 데만도 작업자 3명이 필요했다. 경남 함안군의 대형공작기계 업체인 한국정밀기계 공장의 작업 현장이다.

이 회사 생산부 홍수군 기성(생산직 최고 직급)은 자부심에 찬 표정으로 “우리는 정밀성이 생명인 공작기계를, 그것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기업에 납품한다”며 “이 원통은 미쓰비시가 인도 뭄바이에 설치할 발전소의 터빈발전기 케이스 가공용 공작기계의 몸통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일본 회사들도 인정한 정밀도

1960년 한국금속공업사로 출발한 한국정밀기계는 200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매출액 1000억 원 이상으로 최근 3년간 연속 20% 이상 성장한 ‘슈퍼가젤형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97년 50억 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 매출은 2005년에는 314억 원, 2007년에는 762억 원, 2008년에는 1328억 원으로 뛰었고 지난해에는 1744억 원이 됐다.

한국정밀기계의 제품군은 더블칼럼머시닝센터, CNC수평보링기, 고속항공기부품가공기 등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대형 기계들이다. 이 회사 손용섭 이사는 “자동차회사나 조선소, 중장비업체에서 쓰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를 제조하는 회사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고객 회사들로서는 도구인 공작기계의 품질에 하자가 있거나 납기에 차질이 생기면 자신들의 생산이 첫 단계에서부터 곤란에 빠지는 만큼 요구 수준이 까다롭고 구매에도 신중하다. 한국정밀기계는 탁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형 및 중형기계 시장에서 대형 공작기계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사세를 키웠다.

회사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1990년대 말 2세 경영인인 하종식 대표가 경영을 맡으면서부터다. 연세대 법대를 나온 하 대표는 처음에는 기계에 관심이 없었으나 수입기계 매뉴얼을 번역해주다 가업에 참여하게 됐고, 그 뒤 모르는 것을 현장 직원들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바닥에서부터 몸으로 공작기계업을 배웠다.

○ “기계 고장 난 뒤 정신 차렸다”

하 대표는 회사가 지금처럼 커진 계기에 대해 “외환위기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환율 덕분에 생긴 가격 경쟁력만 믿고 미국 시장 문을 두드렸다가 현지에서 요구하는 공작기계의 수준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

“계약금을 받아놓고 자동차 금형제작기계를 보냈는데 처음 보낸 제품이 미국 공장에서 작업 도중 견디질 못하고 멈춰버렸습니다. 고장 난 기계는 물론이거니와 배에 실린 제품, 선적 대기했던 것까지 모두 바꿔야 하는 대형 사고였죠.”

대금을 못 받아 자금난을 겪는 상황에서 6개월 동안 직원들과 밤을 새우며 뭐가 잘못됐는지 연구했다고 한다. 하 대표는 “정말 고생스러웠지만 ‘기술만이 살길’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고 직원들의 사고방식도 변했다”고 말했다.

기술 개발에 힘쓰는 한편 하 대표가 ‘몇 년 뒤 우리가 뭘 팔아야 하나’를 끊임없이 고민한 것도 성장의 주요인이었다. 자동차 금형가공용 장비를 주로 만들던 한국정밀기계는 하 대표가 2000년경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다녀온 뒤 조선업에 쓰이는 강력 절삭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하 대표는 “현장을 보고 ‘조선업이 곧 엄청나게 커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론 조선소의 엔진제작 장비들이 전부 외국산인 것에 부끄러움도 느꼈다”고 말했다. 곧이어 찾아온 조선업 호황에 한국정밀기계가 특수를 톡톡히 누릴 때 경쟁업체들은 군침을 삼키기만 했다.

○ “중소기업일수록 경영자 판단 중요”

조선업이 한창 호황일 때 미리 발전설비와 중장비 부문용 공작기계를 개발해둔 덕에 조선업 경기가 갑자기 추락했을 때에도 회사 매출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하 대표는 “중국에서 올해 말이나 내년에 건설 붐이 일 걸로 보고, 인도와 중국에서도 발전설비 수요가 높을 걸로 본다”며 “지금도 몇 년 뒤를 대비해 개발하는 장비가 5, 6종 있다”고 말했다.

한국정밀기계는 고부가가치 장비를 다품종 소량 생산해 2015년까지 매출액 5000억 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하 대표는 “일상적인 업무는 부서장들에게 맡기고 나는 새로운 장비 개발과 시장 개척에 집중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일수록 최고경영자(CEO)의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함안=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